세나 이즈미는 꼭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찾듯이 유우키 마코토를 좋아했다. 물론 이것이 올바른 비유는 아니었다. 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있을지조차가 의문이었기 때문에.
여하튼, 전체적으로 볼 때 그 규칙을 어지럽히는 단 하나의 요소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더없이 개인적으로 움직였고, 그만큼 맹목적이라는 의미였다. 몇몇은 그걸 사랑이라고까지 불렀고, 몇몇은 집착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당사자인 유우키 마코토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의식 너머로 계속 밀어내며 부정하곤 해서, 이즈미의 입장에선 참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한 걸음만 넘어 오면 모든 것을 보장해준다는데 왜 겁을 내는지.
자신이 한 말들은 기억이 난다.
"그 문 열고 나가면 이제 다신 안 볼거야. 유우 군을 유우 군으로 부르는 일도 없을거고, 널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만둘거야."
하지만, 마코토가 뭐라 답했는지는 기억이 끊기듯이 토막토막 나 있었다.
"… …ㅡ."
본디 칼 끝 앞에 선 사람은 아무 생각도 못하기 마련이었다. 피부로 와닿는 실감 자체가 남들과는 다른 것이다.
"네가 뭘 하든 상관하지도 않을거고, 널 생각하면서 뭐든 준비하는 것도 이제 그만둘거야. 넌 괜찮겠지."
그래서 언제나 그들의 대화는 늘 벼랑을 뒤로 둔 사람처럼 이어지곤 했다. 일방적이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최근의 대화도 그랬다.
"난 안 괜찮을거야."
"-…ㅡㅡ……. …ㅡ."
이즈미가 더없이 아끼는 동생, 유우키 마코토가 그때 화를 냈었는지, 아니면 울 것 같았는지. 그냥 욱 차오른 감정 때문에 떨것만 같은 손을 꾹 잡아 쥐고는, 해본 적 없는 것을 처음 해본 사람처럼 서투르게 언성을 높여 화를 냈었던 것 같기는 하다. 겁도 많고 아직 어리기만 한 그에게 노력이라 해봐야 겨우 그 정도였다. 울지 않으려고 힘내본건지도 모른다.
"평생을 안 괜찮을지도 몰라."
"그걸,"
"하는 것 마다 손에 안 잡히고, 화가 나고, 어쩌면 다 그만둬버릴지도 모르지. 그만큼이야. 난. 그러니까…."
"왜 나한테 그래요?"
"…뭐?"
"이즈미 씨는 늘……. 자꾸…, 그렇게……. 나한테만, 그러죠."
"그거야 네가 나한테,"
"…너무해요."
이즈미는 순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어차피 늘 이런 식이었다. 이즈미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마코토는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나갔었다.
…그래. 그때의 기억이라곤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급히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어깨와, 살짝 떨리는 걸음과, 흐려지던 눈. 그리고 한숨을 쉬듯, 목 졸린 듯 낮게 죄여지는 소리.
ㅡ
퐁퐁, 두드리듯 얼굴에 분을 바르던 아라시가 분위기를 읽고는 알겠다는 듯 거울 속에서 살짝 눈웃음 지었다. 리츠가 쓸데없이 얹혀주고 간 커다랗고 둥그런 쿠션 인형의 머리를 꾹 누르며 세나는 인상을 썼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너무나 눈치가 빠르고, 자상한 대신 오지랖이 심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하는 것 조차 귀찮았다.
"……."
"으응, 표정이 영 살벌하네, 이즈미쨩."
"……."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걸까나?"
"…쿡쿡 찌르는 건 그만둘래. 진짜 짜증나고, 그거."
"우후후. 이건 인사 정도인걸? 하여간, 이즈미쨩~ 늘 열심이라니까~"
살짝 주먹을 쥐고 화이팅, 자세를 거울 너머로 보고 있자니 속이 꼬였다. 손에 든 쿠션을 저 뒤통수에 대고 던져버릴까, 하다가 그만뒀다.
ㅡ
아.
허공을 가르고 자신에게 수월히 떨어지는 테니스공을 보며 이즈미는 뒤늦게 깨달았다. 잠깐, 나 혹시 거의 차일 뻔한 거 아냐?
아니, 딱히 고백한 거 아니니까 그런 건 성립 안 되는거고?
"…으으, 정말이지! 아까부터 정신 어디 팔고 있는거야!"
"……."
맞아. 그런 거 아냐. 절대로!
"어!? 그렇다고 그렇게 세게 칠 필요는 없…, 으악!"
ㅡ
더운 날이라서 그래. 잘 풀리지 않는 이유는 그것일거다. 아마 그때도 그래서 그런걸거야. 겨울처럼 반듯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던 것도 녹여버리는 이 더위 탓에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았다. 불편한 환경에 오래 노출된 사람은 평소보다 예민한 행동을 저지르곤 했고, 그것 때문에 연쇄작용처럼 일이 망쳐지곤 하는 것이다.
살짝 비어있는 공복이 오늘따라 심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 모양이지. 살짝 고개 젖혀 물과 함께 영양 보충제를 입에 넣고 그대로 삼켰다. 일정한 크기의 알갱이들을 삼키는 것은 이제 꽤 익숙한 일이었다.
햇빛은 뜨거웠고, 세나는 유우키 마코토를 생각했다.
네가 울었던가.
아니, 그렇진 않았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여름이라서 그래.
조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럿이서 즐겁다는 듯이 소리를 높여 움직이는 소리들. 괜스레 짜증스럽게 들렸다. 칼로리 소모는 권장하지만 쨍한 더위 밑에서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몸의 독이다. 문득, 햇빛이 눈부셔서 팔로 두 눈가를 꾹 눌렀다.
보고 싶어.
더운 데, 어디서 아프진 않은지. 썬크림을 제때 바르지 못해서 살을 잘못 태워 버리는 건 아닌지.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불편한 기분은 들지 않는지. 식욕은 아직 남아 있어서 끼니는 잘 챙기고 있는지. 내가 닿지 않은 너는 언제나 미지수다. 파악할 수 없는 너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다.
「그 문 열고 나가면 이제 다신 안 볼거야.」
거기까지 걸면 안 나갈 줄 알았지. 진짜 그럴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하나도 안 듣고 나가버리는 건 반칙 아닌가? 게임이 세팅되기도 전에 판을 뒤엎은거니까 이건 무효야.
「그거야 네가 나한테,」
특별,
하니까.
…아니, 어쩌면 그 말은 하지 않은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유우키 마코토의 속은 아직 말랑하고 잘 여물어 있지도 않아서.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때라고 해서 그대로 전할 수 있을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어쨌거나 정말 중요한 건 아직 내밀지 못했으니까 끝난 건 아니었다. 만회할 수 있어. 여름이잖아.
날이 더워서 그래.
목이 마르고 짜증스럽고 그래서 갈증이 나는 것 뿐이지. 아직 일은 그르치지 않았어. 전하지도 않았으니까.
다가가기에 적합한 시기는 아니었지만서도, 날이 갈수록 무언가가 조금씩 익어가고 있을 때였다. 아주 잠시 우뚝 서있던 이즈미가 손에 들고 있던 물병에 다시 입을 대고 무턱대고 벌컥벌컥 삼켰다. 가슴 안 쪽이 쨍하니 시렸다. 멍든 곳을 억지로 손가락으로 꾹 꾹 눌러대며 버티는 것 같은. 여름같은 연정은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웠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서.
마음만 급해 서투르게 땅을 짚다가 베여버린 꼴이다.
따끔따끔하게 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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