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넥트 노이즈 루트 완료한 기념으로~
"괜찮니? 많이 아팠어?"
어린 시절, 가끔이나마 들었던 말중에 하나였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말을 내게 할 때 미리 짜고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하게 행동했다. 인상을 찌푸린 채, 내게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거나, 내 손목을 끌어다 잡고는 비밀 얘기라도 하듯 작게 속삭거리는 것이다. 갓 태어난 토끼나 강아지들 같은 것에게나 할 법한 섬세한 동작이었다. 어린 나이의 자신은 그 동작의 무엇도 이해하지 못해서, 거울에 비친 것을 따라하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오, 아프지 않아. 아프지 않아요.
아픈 게 뭐예요? 하고 묻는 짓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나이이기도 했고, 본능적이나마 그런 건 안된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맨 처음 그것을 물었을 때의 어머니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아서 일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더 더 오래 남는다. 덜 자라서 무른 살을 푹 뚫어 버리고 남은 흉터는 지워지지도 않고 그대로 과실처럼 썩어버리기 마련이었다. 단 내를 풍기지도 못하고, 때를 놓쳐버려 뭉그러져버린 것. 그런 순간. 그런 존재. 그게 내 유년 시절이었다.
"……."
한쪽 발목의 뼈가 부러졌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기괴하게 틀어진 발을 멍하게 보던 노이즈가 눈을 깜빡이다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숨처럼 숨을 길게 내쉬던 금발의 소년은 몸을 일으키려고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주위 사람의 얼굴을 하얗게 질리게 만들었던 기억 탓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울음소리로 다른 이들을 부를 수가 없었다. 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당연히 하던 것도, 소년에게는 억지로 떠올려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노이즈는 소리를 내보려 숨을 삼키다가 멈췄다. 내부 가득 담긴 숨이 갈 곳 잃고 헤매다가 안에서 터질 것 처럼 멈췄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역시 징그럽겠지.
무서울테니까.
소년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있으면 발목이 틀어져서 흉해진 걸 아무도 보지 못할거라는 어린 생각에서였다. 아프지 않으니 다급히 도움을 요청할 필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있자니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재잘거리는 새소리같고, 물소리 같기도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로 말하고 있으나 온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하고, 서늘하고, 뜨겁고, 차가운 것. 부드럽고 거칠한 것까지. 혀를 통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책에서 본 걸 흉내내고, 동생이 하던대로 따라해봐도 얻을 수 없었다. 소년은 너무 이른 나이에 포기를 배웠다. 어떻게해도 닿을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었다. 조금은, 늦게, 알았으면……좋았을텐데. 하고 어디에 쏟을지 모를 원망이 가슴팍 바로 아래를 묵지근하게 고이곤 그대로 굳어버렸다. 딱딱한 소년은 몸을 웅크렸다. 깨지기 쉬운 달걀을 품에 안는 것처럼 몸을 옹송그리고는 숨바꼭질의 술래가 된 것처럼 수를 세었다.
하나, 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자신에게 오지 않았다. 모든 것들이 그대로, 흩어져 사라지듯 그렇게 곁을 스쳐 지나갔다.
셋, 넷, 다섯.
여섯…….
할수만 있다면,
…일곱…….
아,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여기서 이대로 죽고 싶었다. 무섭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아직 어린 것이 품기엔 지독하고, 쓰라린 생각이었지만 역시 혼자서는 모르는 게 당연했다. 자신이 이해할 때 까지 조근조근하니, 꾸준히 이르고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다.
ㅡ
"……."
깊게 가라앉아 있던 몸이 떠오르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과 함께 노이즈는 눈을 떴다. 통증을 모르던 시절의 꿈었으므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더 현실감 없었다. 노이즈의 꿈은 언제나 두리뭉실해서 구체적이질 못했다. 허우적거려봐도 손에 걸리는 것이 없으니 그대로 가라앉아 버리는 게 당연하긴 했다. 흔히 듣는, '아, 아프니까 꿈이 아니네!'하는 말들은 자신에게만 해당 사항이 없었다.
혼자만 덩그러니 놓여진다는 것과 특별해진다는 것은 다르다. 비슷해 보여도 근본 자체가 아주 달랐다. 나란히 진열해 놓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몇 시……."
천장을 멍하게 올려다보던 시선이 흐르듯 옆으로 떨어졌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밖은 여전히 어두침침했다. 비가 오다가 그친 날이라 그런지, 맨살에 닿는 공기가 평소보다 유독 더 차가웠다. 감기, 걸리면 어쩌지. 습관처럼 다른 이의 걱정부터 하며 이불을 조금 더 위로 끌어올릴 때였다.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눈이 바로 제 옆에 누워있는 둥그런 어깨의 윤곽을 겨우 잡아냈다. 하나뿐인 그의 연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만 잘 자고 있었다. 의식을 집중하니 곧 가라앉은 숨소리가 들렸다. 펄펄 날리는 깃털이 간지럽히는 듯한 감각에, 노이즈는 짧게 웃었다. 평소엔 스스로 눈치가 빠르고 기척을 잘 잡아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제가 볼 때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아프지!? 괜찮아!?」
호들갑스럽게 손목을 잡아채는 그 동작을 아직도 기억한다. 순식간에 확 구겨지는 얼굴과, 그 다음 눈에 띄게 조심스럽게 대하는 태도도. 어설픈 주제에 뭐가 그리 열성이신지 알 수가 없었다.
"……."
자신을 향해 옆으로 누운 채 자고 있는 아오바는 어린 아이처럼 몸을 조금 웅크리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추위라도 느낀건지, 아니면 이것도 그의 많은 버릇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보다 분명 몇 살 위라는데 왜 볼때마다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노이즈는 손으로 아오바의 감긴 눈꺼풀을 건드렸다. 아주 얇은 살을 톡톡, 닿는 듯 닿지 않는 듯 건드려보는 것에 이렇게 온 신경을 기울여 본 적이 지금까지 있었던가. 손가락 아래에 뭔가가 있다는 걸 촉각으로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생소했다.
"…아오바."
"……."
"자? ……."
"……으응, ……."
가볍게 쥐듯 구부러진 손가락에 입술을 누르고, 다시 그의 귓가에 고개를 숙여 소근거리자 반응이 있었다. 응석 부리듯 길게 끌리는 그 목소리에 노이즈는 핫, 하고 짧게 웃었다. 바라는 것. 좋아하는 것. 군침이 도는 것. 손만 뻗어도 닿을 수 있는 것이 곁에 있다는 것은 가끔 놀랄 정도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꿈의 끝에선, 어린 제 곁에 아무도 다가오지 않고 혼자 침묵에 눌려버렸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눈을 뜬 자신은 이미 그때와 달리 훌쩍 자라 있었고, 손에 쥔 것도 확실하게 있었다.
문득 움직여보는 발목은 뒤틀려 있지도 않았다. 이제, 자신은 얼마든지 바랄 때 일어나서 누군가를 쫓을 수 있었다.
"잘 자."
여덟. 하고 어디선가 수를 세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홉. 그리고 열.
찾았다.
이제 어른처럼 몸이 자란 노이즈는 망설이지도 않고 제 연인을 꼭 끌어다가 품에 안았다. 잠에 취해 노곤해진 몸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자신과 같은 냄새가 났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만 독차지 할 수 있는, 이런 이른 새벽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품안에 안긴 아오바가 꿈지럭거리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곁을 스쳐 지나간 모든 것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광경이었다.
노이즈는 가슴 안 쪽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뜨끈한 감정이 퍼지는 것을 기쁘게 견뎠다.
할 수만 있다면,
아니, 앞으로도 쭉 이렇게 영영 함께 지내자.
그동안 지나왔던 제 생을 남김없이 긁어 모아 건네는 심정으로 노이즈는 눈을 감았다. 제 이름도 이제 드디어 하나의 제대로 된 소리로 남에게 불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차라리 내겐 이게 더 꿈같은 이야기였다.
'Dmm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렌아오] 마음행방 (0) | 2015.02.27 |
---|---|
[우이토리] A beautiful death (0) | 2015.02.23 |
[클리아오] 모든 사랑은 천국에서 이뤄진다. (2) | 2015.02.20 |
[밍아오] 마주보기까지 걸린 시간 (0) | 2015.02.18 |
[코우아오] 꽃잎 흐르는 때 (0) | 2015.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