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우아오] 꽃잎 흐르는 때
*리커넥트 코우자쿠 해피 루트에서 이어지는 듯 아닌듯 이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애매한 그런... 그 일러스트를 보면서 썼어요 최고로 행복한 순간ㅜㅜㅜㅜㅜㅜㅜㅜㅜ
*코우자쿠는 체온이 높을 것 같죠... 닿으면 따끈따끈할 것 같아요. 그리고 부끄럽거나 화나거나 감정 변화가 심해지면 체온도 거기 따라가는 게 좀 티나는 타입? (동인 설정이 폭발합니다)
제 몸을 감싸고 있는 붉은 기모노는 꽤 품이 컸다. 무심코, 팔을 들어올려보니 천자락이 아래로 툭 내려가며 맨살을 간지럽혔다. 확실히 코우자쿠의 체구는 자신에 비해 단단한 편이었더랬지…. 품에 안겨 있자면 그리도 따뜻했더랬다. 달콤하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가라앉는 편안한 냄새가 나곤 해서, 저도 모르게 숨을 더 깊이 삼키곤 했다. 친구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한 감상이 거품처럼 보글보글 끓어서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분명 아주 오래전부터, 예전부터 함께 있었지만 위치가 달라진 이후 모든 게 달라보였다.
"…아오바."
예를들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나직한 목소리.
예전에도 분명 다정한 음성을 가졌지만, 지금은 그 밑에 깔린 초조함까지도 읽혔다. 안달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어쨌거나 나는 너를 소중하게 대하겠노라고 온 힘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응……."
대답을 할 때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코우자쿠가 안심한 듯이 웃었다. 살짝 아래로 내려가는 눈매가 기분좋게 접히고 눈에는 온기가 감돌았다. 이리 와보라는 듯 내밀어진 손끝이 단정했다. 사람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다듬는 그 세심한 손끝에 입맞출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자신이 유일했다.
"……."
"왜 부른거야?"
"응? …그냥. 안되는건가?"
"그런 건 아닌데…. 뭐하는거야, 싱겁게."
"하하, 미안."
그래도 불편해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하고 그가 또 한번 웃었다. 정말이지 웃음이 헤픈 사람이다. 신중하고 다정하기만 해서 걱정이었다.
뒷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이 그리도 조심스러워서, 그때마다 아오바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생각했다. 아, 이제 우린 정말 연인이구나, 하는 말이 간지럽게 일렁이다가 가라앉았다. 혀 아래에 고이는 감촉이 단맛처럼 느껴졌다. 뜨끈하게 데운 물에 잠겨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세상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있겠나마는, 그의 곁은 언제까지고 안전할 것 같은 곳이었다.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 지친 숨을 내쉬며 기대오면 받아 안아주는 곳.
「지지 마.」
마음이 꺾일 것 같은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언제나 찾아와 쥐어주는 손이 있었다.
「괜찮으니까.」
고맙다고 솔직하게 말하지도 못한 때가 있었다. 기대고 있노라고. 차마 말로 할 용기가 없어서 알아주기만을 바랐던 시절. 지금 되돌아보면 꽤나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카드를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전해지기만을 바라다니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항상, 누구보다 먼저 알아준 사람이 있다면. 그게 그였던 것 같다.
"…코우자쿠."
"응? …엇."
연한 분홍빛의 꽃잎이 열린 창을 통해 침대 위로 흐르듯 떨어졌다. 코우자쿠가 무심코 잡으려는 듯 손을 움키었지만 꽃잎은 그대로 멀리까지 날아갔다.
"어라, 아쉽네요. 땡."
"놀리지 마. 무심코 손이 나간거야…. 뭔가 이런 거 보면 손이 저절로 나가지 않아?"
"아, 뭔지 알 것 같긴 해. 예전엔 몇 번 그랬었던 것 같은데."
"이젠 안 그러신다? 감성이 메말랐다ㅡ는 걸까?"
"어른이 됐다는 걸로 생각해주면 안되려나?"
"하하, 아이 어른 관계가 있는 지 몰랐, 으와."
순간 바람이 훅 불어와 한껏 물오른 꽃잎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뭐가 그리 웃긴지 코우자쿠가 웃었다. 어딘가 좋은 향이 난다고 했는데, 꽃이 피어서 그런거였구나.
"이거 나중에 치워야 할텐데."
"나중에 내가 할게. 지금은 이대로 괜찮잖아?"
"……뭐어, …나쁘진 않지. 응."
침대의 이불은 붉은 색이라 연한 분홍빛의 점들이 늘어져 있는 것도 꽤 볼거리이긴 했다. 여자들처럼 꺅꺅거릴 생각은 없지만, 보기 좋은 광경이긴 했다. 코우자쿠가 손을 뻗어 근처에 놓인 꽃잎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또 웃는다. 눈가가 부드럽게 접혔다.
"…뭐가 그리 웃겨?"
"아, 아니. 다른 생각이 들어서."
"뭔데?"
"…크흠, 중요한 건 아니니까."
"뭔데 그러는데?"
말꼬리를 잡으며 비스듬히 올려다보자 눈이 마주쳤다. 살짝 눈가가 발긋해진 걸 보니 부끄러운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코우자쿠는 난처하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알려줄 마음이 없으시다 이거지. 아오바가 다시금 재촉하려 할 때였다. 길다면 긴 검은 머리카락에 분홍색 점이 걸려 있었다.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고, 아오바의 신경을 다른 곳에 팔기 위해서인가 뜬금없이 날씨 얘기를 꺼냈다. 어린 시절 아오바가 잘 알던 그런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꽃잎을 묻힌 채로 이것 저것 말을 늘어놓는 게 또 쓸데없이 필사적이었다.
아오바는 또 한번, 그가 너무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손을 뻗었다가, 멈칫하고는 다시 아래로 떨궜다.
"아오바…?"
"있어봐."
그리고는 고개를 기대 그 품에 안기듯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방금 씻고 나와서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에 입술도 따라 젖었다. ……. 코우자쿠가 아오바의 갑작스러운 동작에 당황한 듯 숨을 삼켰고, 아오바는 장난스럽게 눈으로만 웃었다. 머리카락에 걸린 꽃잎을 입술로만 물고는 천천히 고개 들어 눈을 마주쳤다. 겉으로는 살살 녹을 것 같이 생겼어도 역시 꽃잎엔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아오바가 제 손으로 꽃잎을 집고는 흔들어 보였다.
"이거 때문에 그랬어. 이거 때문에. 어디까지 생각한거야? 방금 되게 아저씨같은 표정……."
"……."
"…어, 왜……?"
"아니, 음."
코우자쿠가 시선을 피하듯 아래를 보며 우물쭈물거렸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을 삼키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주제에 티는 날대로 다 나서, 이미 모른척 해주기엔 또 늦었다. 뭐야, 기껏 서비스해줬다니 싫다는 건가. 아오바가 살짝 우울하게 인상을 찌푸리려던 순간이었다. 코우자쿠가 아오바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부드럽게 스치는 정도의 거리. 평소보다 약간 온도가 높은가? 생각할 때였다.
"!? 어, 어이, 코우……."
아주 조용히, 그가 고개를 숙여왔다. 으아?! 아오바가 눈치채고 몸을 뒤로 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시야가 온통 코우자쿠로 가득해졌다. 코끝을 스치는 젖은 향냄새가 아찔했다.
"……ㅡ…."
숨이 겹쳤다. 벌려진 사이에 겹쳐진 혀가…….
"…후으……."
"……음."
심장이 아플 정도로 크게 두근거렸다. 그는 언제나 다정하게 침범해왔다. 덕분에 내겐 상처 하나 남지 않는다. 아오바는 천천히 몸에 힘을 뺐다. 아주 맡기는 듯, 그가 눈을 감았다. 시야가 어두워도 무섭지 않았다.
"……뭐야, 갑자기…."
"미안, 역시… 놀랐어?"
"놀랐다기 보다는…. 뭐어……."
말을 줄이며 코우자쿠가 엄지 손가락으로 아오바의 입술 아래를 문질렀다. 자기가 먼저 입을 맞춰온 주제에 얼굴은 여전히 붉었다.
"꽃잎이 묻어서."
"…어?"
"떼어주려고…했다고나 할까……."
…그럴리가 있겠냐. 거짓말을 해도 좀 믿을만한 거짓말을 해야 통하지……. 잠시 멍청하게 있던 아오바가 결국은 웃고 말았다. 아, 심술 좀 부려볼까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소리내서 웃자 코우자쿠도 조금은 안심한듯 다시 아오바의 한쪽 어깨를 감싸고 제쪽으로 쭉 당겼다. 언제까지고 떨어져 있지 않은 것 처럼 기대게 하고는 다른 손으로는 아오바의 손을 잡았다. 어리광을 부리듯 닿은 볼을 살짝 부비던 코우자쿠가 안도하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단단한 품이었다.
"…제대로 떼어낸 거 맞지? 믿으니까 거울 안 볼게."
"응, 확실하게 떼어냈으니까 이제 괜찮아."
"그래."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손깍지를 꼈다.
"있지, 코우자쿠."
"응?"
좋아해.
"…아무것도 아냐."
좋아하고 있어.
"뭐야, 싱겁긴."
"아하하, 미안."
방금까지 코우자쿠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억지로 꿰어 맞추는 퍼즐이라도 좋았다. 그저, 이 순간을 오래 오래 같이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도 족했다. 아오바는 또 한번 눈을 감았다. 어두워지는 시야에, 분홍색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환상이라도 좋았다. 제 곁에 머물러있는 체온이 있는 한, 그는 뭐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