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슈미카] 카게히라 미카에게 있어 구원이란.
*앙스타 전력 60분으로 썼습니다! 주제는 '구원'이었네요!
*과거 설정 및 기타 등등의 날조 설정이 있습니다!
당신을 보고 있으면 뭐든, 이 사람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존경심과도 같았고, 동경과도 같았고, 그 모두를 섞은 것과 닮아 있었다. 미카는 굳이 그것에 이름을 붙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을 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하는 볼품없는 말들 중에서도, 그 사람은 그 믿음만큼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스스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 잘 아는 이 처럼 행동했고, 그것은 미카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눈부신 풍경이었다.
따라 잡고 싶다, 따위의 생각 조차 들지 않는 높이에 당신이 있었다.
그것만이 위안이었다.
나의,
존경해 마지 않는,
유일한,
나와는 먼…….
ㅡ
"…음,"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해도, 빈 뱃 속으로 움직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응으아……. 신음 소리와 한숨을 섞어 흘리며, 책상에 납죽 엎드려 있던 미카가 고개를 들며 긴 옷소매로 눈가를 부볐다. 아르바이트로 지쳐서 아주 조금만 엎드려 있자는게 그대로 잠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웅웅 울리는 것 처럼 들리는 차임 벨 소리에 고개를 탈탈 털자 조금씩 조금씩 주위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점심 시간이었다. 의자가 드륵 끌리는 소리와 함께 부산스러운 인기척에 주위가 요란해졌다. 누구의 목소리라고 할 것 없이 죄다 섞여서 엉망진창으로 구겨졌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으면 눈길이 쏠릴 수도 있으니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발키리는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부족한 것이 보여서는 안되었다.
카게히라 미카는 가져온 페트병을 들고 이츠키 슈가 있을 법한 곳으로 갔다. 처음엔 혹시 모르니 교실이었다. 꽤 빠른 시간이라, 평상시라면 있을 법 했는데도 그는 없었다. 수예부실을 떠올렸지만, 굳이 가진 않았다. 쫄쫄쫄 쫓아가자 몇 번 혼이 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심 시간의 반 토막이 지나면 그때 가도 충분하겠지. 그래서 미카는 옥상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길 바랐다.
ㅡ
미카의 스승인 이츠키 슈는 한 번의 추락을 겪었다. 미카가 제 아무리 그 주위를 번들번들하게 닦고 천으로 덮어 숨겨 보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증거를 하나 남겨버렸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츠키 슈에겐 두 명이 있었다. 카게히라 미카와 금발의 사랑스러운 마드 누나. 종종, 그녀는 멍청한 미카가 읽지 못하는 이츠키 슈의 심리를 대신 말해주곤 했다.
「너무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렇심더.」
처음엔 그저, 그렇구먼, 하고 말하고 넘겼지만서도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마 슈를 데려올 수는 없어서, 미카는 그가 갑자기 벌이는 모든 행동들을 녹음하거나, 작성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는 전문가를 찾아가 그 앞에 앉았다.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완벽한 그를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를 일부러 찾아내는 배신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것을 먹으면 뱃 속에 아프고 구역질이 난다는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집어 삼키듯, 미카는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해내려 애썼다.
망가지지 않을 사람의 망가진 조각들을 몰래 몰래 그러모으며, 미카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이 모든 건 그 사람을 위한 거지 흠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고.
「거, 그렇잖슴꺼. 너무 높은 곳에 있다가…….」
떨어지면,
「아니, 아니, 그…, 그게 아니고예. 아, 아무튼…. 반동이라캄니꺼? 그런 거라고 보는디예…….」
부서지듯이.
「……그, 아무튼, 선생님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어서예…….」
더 많이 상처 입듯이.
그런 게 아닐까, 하고. 감히 생각했다가도 있을 수 없는 생각이라며 급히 지우기를 반복했다.
ㅡ
"…네?"
"아니, 그…. 아뇨. 저도 걱정되어가지고 와본 건 맞는데예. 그걸 듣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그냥, 그…. 뭐라 캄니꺼. 스트레스? 고것땜시 잠시 힘들어 하는 거니까 뭐 그런……."
"……그런 걸줄 알았거든예. 그래 갖고 지가 혼자 온건디."
"아, 아니…. ……네. 네."
"…음, ……네. 데려 올 수 있음 데려 오겠심더. 그런데…, …아뇨. 그, 혹시 뭐 이것 저것 설명해주실 수 있겠심까? 제가 스승님께 전해 들릴라카면 아는 게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예……."
피가 쫙 빨린 기분으로 도망치듯 걸었다. 소독된 정결함. 약 냄새. 하얀 가운이 사락거리는 소리, 고급 슬리퍼의 푹신한 감촉까지 모두 거슬렸다. 까끌한 것들을 피하듯이 움직이다가, 병원에서 한참 멀어진 이후에야 미카는 멈췄던 숨을 뱉을 수 있었다.
자신은 이걸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평생.
그렇다면, 말하지 않은 채로 있도록 하자.
ㅡ
올바른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식으로 전문가 앞에 데려가야 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몇 번이고 생각해봐도 카게히라 미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츠키 슈는 잘못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 시간을 들여 쉬어야 할 뿐이었다. 다시금 완벽한 무대를 조율할 수 있게 되면, 다시금 나란히 서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면, 그의 모든 면이 증명되고 인정 받으면. 그것으로 되는 문제일 테였다.
느즈막히 올라간 옥상엔 아무도 없었다.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며 페트병 뚜껑을 따고 그 끝을 입에 물었다. 꼴꼴꼴꼴 넘어오는 물을 삼키다보니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아르바이트 비, 조금만 기다리면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그때엔 제대로 챙겨 먹자. 오늘은 이 정도로 되었다. 정 뭐하면, 점심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날 즈음이면 자판기에 가서 뭘 하나 뽑아 와도 괜찮을테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물었다. 그를 구하고 싶은 거냐고.
몇 번이고 꼴딱꼴딱 물을 마시고 푸하, 하고 입을 뗀 미카가 옷 소매로 품위없이 입가를 슥 문질러 닦았다. 어느 정도 채워진 배를 느끼며 고개를 올려다 보니, 오늘은 유독 구름이 적은 푸른 날씨였다. 그리 덥지도 않으니 그가 산책하기에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미카는 생각했다. 그건 아니지 않을까, 하고.
애초에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나 같은 게 그게 될 리도 없고.
그런 대단한 건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거지. 내겐 어렵잖어. 오히려 내겐…….
가만히 페트병을 쥔 채로 손을 늘어뜨리다가 제 옆에 얹었다. 저 멀리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가 사그라 들었다. 소란스럽고 경박한 건 이츠키 슈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도 멀리 하기로 한다.
미카는 잠시 이대로 숨어있기로 했다. 사실, 당장이라도 스승의 곁에 가보고 싶긴 했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정해진 패턴에 익숙한 그는 돌발적인 일에는 약했다. 조금이라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종종, 위험하고 고난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구해지거나 구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했다. 카게히라 미카의 구원은 이츠키 슈였다.
카게히라 미카에게 있어 구원이란,
이 세상에서 구해지거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만이 이 세상이라서 다른 것들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
그런 자리를 마련 해 주는 것.
한 순간이라도 상관없이 기쁜 것.
그러니 그냥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카게히라 미카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츠키 슈의 구원을 될 수 없었다는 것 또한, 그래서 알았다. 하지만 이 세상이 무너지는 건 슬프고, 아프고, 있으면 안 될 일이니까 자신은 그것을 막고, 조금이나마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는 무너질 사람도 아니었고, 그래서도 안되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명제 따위는 이런 자신이라도 깨부술 수 있었다.
그렇잖여. 세상이 안 무너졌음 좋겠데이, 하고 일일이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겠슴까.
미카는 어린 아이가 하듯이, 등을 벽에 기대고는 양 무릎을 꼭 붙이곤 팔로 끌어안아 몸을 지탱했다. 책상에 엎드리듯이 고개 숙여 푹 엎드리자 숨이 조금 불편해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대단한 사람 이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그를 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밖에 되지 않아서 미안해요. 몇 번이고 되뇌여왔던 사과를 속으로 반복하며 눈을 감았다.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이 내 세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