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유즈] 좋아함의 공식
*입덕한지 얼마 안되어서 캐해석이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ㅠㅠ)>(자신없음)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너무.. 쓰고 싶어서 그만... 얘들아 조아해.....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도 아닌데 매번 힘들고 어려운 사랑에게 운명을 감지해버리곤 했다. 편한 길을 한 번도 우습다 생각한 적이 없는데도 매번 이러는 거 보면 이것도 체질이며 병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뭐, 이루기 힘든 것이라해서 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구불구불한 길이라고 해서 포기할 만큼 근성이 없지도 않았고. 이 감정 자체를 없던 거라고 우길 만큼 답이 없지도 않았다.
뭐든지 적당히, 를 모토로 살았지만 이 분야 만큼은 예외였다. 좋아하는 것은 마음껏 했지만, 거기서 한 걸음 내 딛기만 하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유일무이한 것.
나루카미 아라시는 사랑만큼은 늘 특별한 것이라 분류했다. 그것은 이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물결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려웠다.
그래서 하지 않기로 했다.
ㅡ
2-B반은 꽤나 개성넘치는 아이들이 많았고, 아라시는 그것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끝내는 엎드려 누워 있는 리츠의 어깨 너머, 누군가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단정한 옆 얼굴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보였다. 후시미 유즈루는 그 일과가, 아니, 일생 자체가 특정한 타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이 굴곤 했다. 충실하다 못해 미련하기까지한 그의 하루는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토리와 관계가 한 자락이라도 있다 싶으면 늘상 그는 의욕있게 움직였다.
그게 다 보답받으며 지내는 것 같으면 차라리 아무 말 안 할 텐데. 부던히도 노력한다, 하고 생각한 것이 첫인상이었다. 뭐든 열심히하는 남자 아이는 싫지 않았으므로, 아라시도 유즈루를 좋게 평가하곤 했다. 안쓰럽다고 하기엔 좀 부족했다. 적어도 유즈루는 힘들어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 나루카미 님."
"응, 안녕, 유즈루 쨩~"
아라시는 시선에도 분명 힘이 있다고 믿는 타입이었는데도, 종종 저 아이를 볼 때엔 느슨하게 있곤 했다. 어쩐지 알아차려도 돌아보지 않을 것 같다고 지레짐작해버리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마다 유즈루는 고개를 돌렸다. 늘상 깔끔하게 웃는 낯이던 유즈루도 혼자 있을 때엔 종종 풀어진 얼굴을 하곤 했다. 편하게 올린 손목의 선이 긴장하고 있는 것 보다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듯, 유즈루 또한 그랬다. 몇 번 느리게 깜빡이던 아이의 눈이 자신을 인지할 때 마다 적당하게 휘어지며 웃는다. 점차 점차 펴지는 식물의 잎사귀 같은 움직임이었다.
히메미야와 있을 때엔 아마도 없을 패턴이었다.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사실 묻지 않아도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했다. 유즈루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래? 드문 일이네~"
"그런가요? 최근엔 날이 더워져서 그런가. 멍하게 있을 때가 많아서요. …슬슬 정신을 차려야 할텐데,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후후, 역시 유즈루는 착실하다니까~ 그런 점은 정말로 좋아해."
유즈루가 소리내서 웃었다.
"나루카미 님은 정말로 많은 것들을 좋아해주시네요. 상냥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햇빛이 눈부셨다. 한 순간의 착각처럼. 환했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리츠가 잠꼬대처럼 칭얼거리자 마오가 일어나 창가의 커튼을 쳤기 때문이었다.
ㅡ
지나치는 길에 토리와 안즈가 같이 있는 게 보였다. 점심 식사 종이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실문을 열고 나가던 유즈루의 뒷모습을 떠올린 아라시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엇갈린걸까? 아니면,
토리는 떼를 쓰듯 안즈의 소맷자락을 끌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피하는 걸 수도 있고.
아라시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사라지는 방향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뭐, 맹목적인 충성이 꼭 답을 받으라는 법은 없지. 아라시가 보기에도, 유즈루의 과보호는 좀 줄일 필요가 있었다. 관계의 파탄은 늘 무게 중심을 잘못 둔 감정에서부터 시작되곤 했으니까.
"…아."
교실로 막 들어가려던 차에, 복도에서 유즈루와 마주쳤다. 영 곤란하고, 낯설고, 애매한 걱정이 섞인 표정이었다. 역시 그들을 못 만났구나. 아라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웃었다.
"무슨 일이야, 유즈루 쨩? 하나 뿐인 젓가락이 땅에 떨어지기라도 했어?"
"그건 아닙니다만…. 도련님이 보이지 않아서요. 말도 없이……."
"그야……. 뭐, 식사하고 있는 거 아니겠니? 토리쨩도 자기가 편하게 밥먹을 장소는 자기가 고를 수 있는거고."
"음……."
아차차, 좀 그랬나.
"……."
유즈루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보니, 최근 들어서 유즈루가, 도련님이 자신과 점심을 먹어주지 않는다는 말을 안즈에게 하던 걸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유즈루쨩은 점심 먹었고?"
"네? 그건……, 아직입니다만."
"그런가~ 그럼, 괜찮다면 나랑 같이 먹을까?"
"?"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이던 유즈루가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장족의 발전이긴 했다. 수학여행 때 등을 열심히 밀어준 보람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외롭지 뭐야~ 응?"
"…그."
"뭐, 정 불편하다면 강요는 안 하겠지만 말야! 어때? 무리?"
"아뇨, 무리까지는……."
"오늘은 날씨도 좋고 말이야. 그럼 함께 해주련?"
"…음, ……네. 저로 괜찮으시다면."
"물론이지~ 이리 와."
오지랖도 누나의 특권이었다. 이 정도 간섭 쯤이야 괜찮겠지, 하고. 딱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어쨌든 마주치지 않게 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서.
ㅡ
유즈루도 그 나이대의 아이처럼 웃을 줄 안다.
그 사실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는 아무래도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손을 잡으면 당황하지만, 안심시키면 얌전히 있기도 한다. 납득한다면 끌어가도 그대로 걸음을 걸어주는 면도 있었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느렸고, 장점이라고 한다면 언제나처럼 성실했다.
이것저것 말을 하다보면 그런가요? 하고 고개를 기웃하다가, 대단하십니다. 저로선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고 끝나곤 했다. 탄탄했지만 늘상 좁은 대화였다.
ㅡ
그런 유즈루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상담할 게 있다고 화제를 꺼내는 것에는 제 아무리 요령좋은 아라시라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유즈루가 영 곤란한 얼굴을 하다가 애써 웃었다. 자신도 아마 어색해서 견디기 힘들었을테다.
"응, 나라도 된다면 언제든지 오케이야. 오히려 기쁠지도~ 의욕이 퐁퐁 샘솟는걸♪"
"감사합니다. 늘 나루카미님께는 도움을 받게 되네요. 은혜는 갚도록 하겠습니다."
"또 그렇게 말한다~ …우리, 친구잖니?"
아라시는 일부러 그런 단어들을 쓰곤 했다. 유즈루는 확인을 몇 번이나 시켜주고 나서야 겨우 그런가요, 하고 수긍하곤 했다. 일종의 학습이었고, 안겨주는 꽃다발같은 선의이기도 했다. 아라시는 귀찮아지는 일은 질색이었지만, 애쓰는 남자 아이에겐 언제까지고 무른 구석이 있었다. 그래, 여기까진 괜찮았다고 치자.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내일 학교 끝나고 카페나 갈까?"
"음, …그럴까요. 나루카미 님이 편하신대로 하겠습니다."
"응, 사실 거기에~ 새로 나온 파르페. 먹어 보고 싶었거든! 유즈루쨩은 칼로리니 뭐니 하면서 괴롭히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좀 신기한 일이긴 했지만,
"나루카미 님은 혼자서도 잘하시는 분이니까요."
의미를 두기엔 사소하다고 여겼다.
"아, 유즈루 쨩. 여기, 여기~"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유즈루가 잠시 망설이다가 아라시 쪽으로 다가왔다. 이런 자리는 익숙하지 않을 것 같으니, 일부러 구석진 자리를 맡아놓고 있던 참이었다. 유즈루는 아라시의 맞은편에 앉으며 가방에서 작은 봉지를 꺼냈다. 작달막한 쿠키가 몇 개 들어있는 투명한 봉지의 끄트머리엔 리본이 깔끔하게 매어져 있었다.
"어떤 색을 좋아하시는지는 몰라서 적당히 골라봤습니다."
"어라, 이거 그거? 성의의 표시, 그런거?"
"네, 나루카미님의 귀한 시간을 제가 뺏게 된 셈이니까요."
"그렇게까지 부담주는 얘기인지는 몰랐는데."
"아, 그렇게 되는 걸까요…. 송구하네요."
"농담! 말만 그렇게 해본거야앗."
성의는 고맙게 받을게♪ 두 손으로 쿠키 봉지를 흔들어 보이고는 가방에 쏙 집어 넣었다. 메뉴판을 들어 펼치며, 아라시가 흥얼거리듯이 말했다.
"아, 그래서 뭐 먹을거야?"
"음. 전 그냥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주스 정도로."
연애 상담일까? 아라시는 장난처럼 생각했다. 물론, 그럴리가 없다는 확신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주문한 거 왔네. 하아, 이게 너무 너무 먹고 싶었지 뭐야♪ 최고! 어라어라, 그러고보니 본론이 자꾸 미뤄지는데. 그냥 편하게 말해, 유즈루 쨩!"
"아…. 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영 쭈뻣거리던 유즈루가 천천히 긴장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ㅡ
음,
연애 상담이었으면 귀엽기라도 했겠지.
파르페를 한 입 떠 먹으며 아라시는 입을 우물거렸다.
뭔가를 좋아하는 법을 알고 싶다고. 꽉 막혔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니, 좋아하는 것의 가짓수가 늘면 도련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보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많은 걸 좋아하시는 나루카미 님께 여쭤보고 싶었다, 는 얘기였다.
뭔가를 좋아하는 법?
그런 것에 공식이 있어서 해답이 짠, 하고 나올리가 없잖아. 이유를 따지는 순간부터가 탈락인걸. 정말, 열심이지만 요령 없는 남자 아이는 가여울 정도네…….
그게 귀여운 거지만.
저게 바로 그 성장통 비슷한 걸까?
ㅡ
그 날의 얘기는 어영부영 끝났다고 기억한다. 애초에 말로 설명해서 납득시킬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유즈루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는지, 괜찮다는 듯 웃기만 했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시시한 얘기들만 쭉 늘어놓던 아라시는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였고, 유즈루는 그 얘기들을 꼭꼭 씹어 삼키듯 들으며 눈을 내리 깔았다.
「연애라도 해보는 거 어때?」
「…? 네? 아니, 전 고용인으로서 도련님의 일과를 책임져야 하므로 그런 이성 교제는 곤란한데요.」
「아니, 그럼. 음. 연애 체험…. 어라, 이거 내가 너무 가벼워 보이는 말이네? 음, 가볍게 생각해보는 건 어때?」
「가볍게요…….」
아라시는 느긋하게 교문을 넘어 등교하며 하품을 했다. 전날에 했던 대화들은 꼭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떠오르곤 했다.
「그러면, 뭐든 하나를 골라서 제대로 좋아해보는 건 어떨까? 좋아한다~고 생각하려고 애쓰고, 의식한다거나?」
「음, 예를 들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으니까. 유즈루쨩은 경험 부족으로 보이니 무리해서라도 많이 해도 된다고 생각해~ 실수해도 좋은 때는 우리 나이대 정도 잖니?」
문득 올려다 봤더니 유즈루가 있었다. 어라, 이쯤가면 운명이라도 되는 걸까. 아라시는 쓰게 웃으며 그 시선의 끝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사실, 보지 않아도 그 끝에 누가 있을지 정도는 알았다. 분홍 머리카락의 사랑스러운 누군가가 있었다. 넘어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걱정이 되어 못 견디는 걸까.
토리쨩 외의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 유즈루쨩이라……. 뭐, 꼭 굳이 연애 감정을 얘기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라시는 타고난 로맨티스트였다.
짜맞춘듯 맞아 떨어지는 타이밍, 잠깐 눈에 밟히는 그 순간과 느낌에 약했다. 찌릿, 하고 오는 그 불규칙한 전류는 늘상 그를 들뜨게 하곤 했다.
"…어?"
「정말 정말 못 찾겠다면, 이 누나를 좋아하게 되어도 좋아요. 꺅, 부끄럽지만 받아줄 수 있으니까?」
저 편을 바라보고 있던 유즈루가 천천히 고개 돌리다가 자신을 발견한듯 우뚝 멈췄다. 또다시, 살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그가 입을 우물거리다가 이내 웃으면서, 아라시에게 손을 흔들었다.
고작 그것 뿐이었다.
"……으응?"
너무나 사소하고 단순해서 앨범에 남기지도 못할 그런 순간에,
"뭐니, 이거?"
사람은 제 발에 걸려 넘어지듯이 함정에 빠지곤 했다.
아라시는 난처한 얼굴로 제 입가를 한 손으로 가리다가, 눈이 마주친지 꽤 오래 지났는데도 자신이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상대도 의아하게 여기는 게 보였다. 더 의심사기 전에, 아라시는 활짝 웃어주고는 재빨리 걸음을 걸어 그 자리를 피했다.
햇빛을 받아 하얗게 보이는 얼굴.
어색하게 흔드는 손이 천천히 내려가면서, 커튼을 꾹 붙잡는 동작.
늘 단정하게 입은 옷차림, 같은 것.
"어머, 이런 갑작스러운 건 싫은데……."
가슴 한 구석이 묘하게 간지러웠다. 대체 왜 자신이 그런 걸 조언으로 내던진 건지도 모르겠고, 그걸 의식하고 있는 것도 우스웠다. 예리한 감이 위험하다며 빨간 불을 켰다.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그냥 착각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는 것.
후시미 유즈루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끝은 뭔가 아프기만 될 것 같았다.
"……."
아라시는 사실, 매번 힘들고 어려운 사랑에게 운명을 감지해버리곤 했다. 그는 언제나 진심으로, 온몸을 던지다시피 진지하게 사랑을 한다. 꼭 그렇게 되어 버리곤 했다.
"정말로 곤란한데……."
그의 좋아함의 공식이란 이렇게 제멋대로이고 엉망이었다. 역시, 남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손끝이 살짝 저릿하게 느껴졌다. 꾹, 주먹을 말아 쥐니 금방 멈췄다. 받은 쿠키, 남에게 양보하지 않고 혼자 먹기 잘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