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마코] 불면증
*이즈마코지만 마코토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과거 임의 설정
가볍게 주변을 힐끗거리다가 곧장 카운터에 가서 서니, 약사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라고 하길래 증세를 말했다.
"어…. 병원에는 가보셨어요?"
세나 이즈미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아뇨, 아직.
"음, 그럼 드릴 수 있는 게 이 정도이긴 한데. 병원은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약 먹어보고 안되면 그때 가보려고요."
앞에 놓여진 네모난 곽에는 수면 개선이라 적혀있었다. 일시적 불면에 따른 다음과 같은 증상의 완화. 잘 잠들지 못하는 사람,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에게.
묵묵히 약 상자를 내려다보고 있자 약사가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다. 만 15세 이상의 기준으로 하루에 2알. 하루에 한 번 자기 직전 물과 함께 삼킬 것. 가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많이 먹어서 좋을 것 없는 약이에요.
이즈미는 지갑을 꺼내곤 돈을 놓았다. 학생인 것 같은데 조금 깎아줄게요. 거스름돈을 걸러주며, 약사가 또 한 번 말했다. 이거, 많이 먹으면 안되는 약이니까요. 주의해주세요. 주의 사항 꼭 읽어주시고요.
"네."
제 손바닥보다 작은 약상자 하나를 그냥 주긴 그랬는지 포장지에 감싸며 약사가 또 한 번 말했다. 다른 약과는 다르니까요.
ㅡ
일차성 불면증이란 수면의 시작이나 수면 유지의 어려움, 또는 원기 회복이 되지 않는 수면을 호소하는 수면장애로, 내과 질환, 우울장애 등 타 정신과적 장애나 약물 등의 요인이 원인이 아닌 불면증을 말한다. 인터넷 사전을 참고하자면 정의는 이랬다. 적어도 1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되어야 한다.
막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옷을 편하게 갈아입은 이즈미는 스케쥴 다이어리를 펼쳐 일정을 체크했다. 내일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빈 시간이었다. 한참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덮었다. 최근, 일상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동작이 평소보다 반 박자 느려졌다. 화면을 꺼둔 핸드폰에 녹색 빛이 반짝였다.
[이즈미 쨩, 좀 괜찮아?]
그 뒤로도 무언가 말이 붙은 것 같지만, 미리보기로 뜨는 정도만 알면 될 테였다. 세나는 그것을 눌러보지도 않은채 다시 폰 화면을 검게 꺼뜨렸다. 제대로 쉬지 못한 지 1개월이 넘었다. 가뜩이나 부드럽지 못한 기분이 한층 더 구겨진 종이처럼 지저분하게 가라앉았다.
갑자기 좀 괜찮아 질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걸 망치고 있었다. 지금껏 균열 하나 없이 지내고 있었던 것이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벌려지는 틈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안 괜찮아. 모든 것을 포함해서. 게다가 그런 것들을 굳이 손가락으로 쳐서 텍스트로 변환시키고 전송시키는 모든 과정이 번거로웠다.
잠들 수 있는 시간이 점차 늦춰지자 일상에서도 티가 나기 시작했다. 원래 남에게 호소하지 않는 성격인지라 그리 퍼지진 않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나루 군이 낯을 이리저리 살펴오다가 체리같은 것들을 권하기 시작했다. 사전 조사라도 하는지 전학생도 다녀갔고, 잘 자다 못해서 너무 잠들곤 하는 쿠마 군은 종종 자신을 보며 잘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급기야 눈치없이 카사 군이 화제를 입에 꺼내는 순간, 이즈미는 이 모든 상황이 굉장히 귀찮게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세나 이즈미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고.
"……."
전학생이 알아갔다는 건 유독 친하게 지내고 있는 트릭스타들의 귀에 흘러갔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지칭하면, 유우키 마코토 군이라든지. 문득 멀리서 마주친 순간 그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한 적이 있었다. 불편하고 싫은 것을 마주했으나 그것에 대한 연민과 걱정은 하고 있는 듯한 표정. 굉장히 기분이 이상했다. 잠시 마주친 것 뿐이었고, 유우 군은 끝내 곁에 오지 않고 돌아서 가버렸지만. 그건 그것대로 찝찝하게 차인 것 같았다.
"짜증나…."
늘 씹던 말을 오늘도 입 안에 꾹꾹 씹으며, 이즈미는 방을 나가 욕실로 들어갔다.
ㅡ
머리를 다 말리자 마자 건성으로 침대에 앉아 천장을 쭉 올려다 봤다. 별 의미없었던 스트레칭을 한 세트 반복하고는, 가방을 열어 포장된 약을 꺼냈다. 거의 무게감이 느껴지지도 않게 가벼운 케이스를 열고는 봉지를 뜯고 약을 꺼냈다. 새하얀 알약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고작 이거에 약 300엔 치 였다. 이걸 해도 안된다면 정말 병원을 찾아가야겠지. 물이 가득 담긴 컵을 가져와 입에 머금고는 약을 목 너머로 삼켰다. 이즈미는 어렸을 때 부터 주사나 약 같은 것에는 의연했다. 그것을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필요하고 이로운 것은 가까이 하고 가치없고 투박한 것은 멀리 한다.
이젠 제 기억속에만 사는 어린 유우키 마코토는 주사기 끝의 예민한 바늘이나 쓴 가루약에는 영 약했다. 어른들이 사탕을 내밀어도 고개를 저으며 제 품에 쿡 박혀 나오려 들지 않는 그 어린 고집이 사랑스러운 때가 있었다. 유독 모든 일에 순종적인 아이가 그런 것에만 어쩔 줄 몰라 피실거린다는 것도 귀여웠다.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난 어린 새 같아서, 이즈미는 그런 때의 유우 군에게는 평소보다 더 다정하고 상냥했다.
어른들이 난처한 얼굴로 자신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즈미는 어린 유우 군의 등을 도닥이며 몇 번이고 달랬다. 아마,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하는 위로와 격려가 더 효과 좋을 거라는 신빙성 없는 믿음 탓이기도 했을거다. 그들 눈에 보이는 어린 소년들은 분명 사랑스러웠을 것이 분명하다. 무서워? 유우 군? 괜찮아, 형아가 있잖아. 귓가에 속살거려주면 유우 군은 낑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빨리 나아야 형아랑 더 오래 있을 수 있는거야. 아프고 쓰린 건 나쁜 거지만, 유우 군을 건강하게 하니까 저것들은 사실 좋은 거야.
「그러니까 아프지 말자. 응?」
이 모든 것들이 부디 효과 있길 바라며, 이즈미는 방의 불을 끄고 누웠다.
ㅡ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몸을 누인 탓인지 바로 잠이 들지는 않았다. 약기운이 몸 안에 다 돌기를 기다리며 숨을 느리게 쉬길 반복했다. 아프진 않았지만 제 텐션을 어지럽히는 이 모든 증상이 미칠듯이 짜증이 났다. 문득, 세나 이즈미는 유우키 마코토를 떠올렸다. 아프지 않으니 어리광조차 부릴 수 없다.
역시 그때, 돌아서는 유우키 마코토를 보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면, 유우 군, 하고 이름 한 번 부르며 평소처럼 웃던지. 그냥 멍하게 보고 있기만 했다. 와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ㅡ
…눈을 뜬 이즈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입 안이 바싹 말라 목이 마르다는 것이었다. 옆에 놓아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뒤척이다가 겨우 잠든지 2시간이 지나있었다. 이거라면 평소랑 다를 게 없었다.
자는 사이에 약 기운이 퍼졌는지 몸이 눅진하게 무거웠다. 맨발바닥에서부터 지근지근히 울리는 느낌이었다. 이건 이거대로 끔찍했다. 약사가 왜 그리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주 먹지는 못할 약이었다.
꾹 눈을 감고 있어도 심장이 두근, 두근, 평소와는 다른 박동으로 움직였다. 입안의 살들이 묘하게 평소보다 부은 느낌이었고, 평소에 의식도 하지 못할 혀가 유독 두툼하게 느껴졌다. 혀로 입안의 살을 부드럽게 쓸었다가 그만 두었다. 바짝 바짝 말라붙고, 아래로 축축 늘어졌다. 머릿속까지 약에 절여져 불어터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시, 잠들어야 하는데. 아무런 의식없이 이즈미의 손이 베개 겉을 쓸었다. 손안에 달라붙는 감촉.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만으로도 입 안이 신경쓰였다.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것도 조금 힘겨워서, 이즈미는 눈을 감은채 계속 계속 버텼다. 아,
이 상태에서… 유우 군이랑 키스하면,
어떤 느낌일까…….
어떻게 다뤄도 가장 말랑할 부위를 건드리고 서로 비비고 적시면 지금처럼 입이 마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즈미는 눈을 감은 채 느릿느릿 다시 베개 겉을 쓸었다.조금 힘을 눌러 담은 손으로, 유우 군을 만지고 입을 맞추면…. 조금 헐렁한 옷깃 아래의 살은 어릴 때 처럼 연하지 않을거고, 유우 군은 여자 아이처럼 말랑하지 않을 테지만 매끄럽게 아래로 내려갈 게 분명했다. 목이 마르고 마르고 말랐다. 투명하지 못하고 끈끈한 용액을 가득 삼켜버린 것 처럼. 평상시와는 명백하게 다른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세나 이즈미는 잠들 수가 없다. 오늘도 그랬다. 이제 그의 새벽은 어두운 푸른색도 아니었다. 그저, 질척한 검정색의 싸구려 페인트가 칠해진 시간이었다.
어디가서 괴롭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평상시의 그가 봤으면 질색할 정도로 약해빠진 표정으로 널부러져 있는 게 다였다. 유우 군.
그래서 덤덤하게 앓았다.
여전히 발끝까지 저릿하게 저렸다.
다음과 같은 사람은 약을 복용하지 말아주세요. 1. 임산부. 2. 15세 미만의 아이. 3. 일상적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 4. 불면증 진단을 받은 사람.
복용에 관해서는 설명서를 꼭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