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우아오] 더듬어 피기
*트위터에서 컾링 리퀘로 받은 거! 라엘님 감사합니다!
"……."
촘촘한, 탄력있는 살에 길을 내어 색을 흘리고, 그것을 굳힌 커다란 상처 자국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꿈틀거렸다. 지독하게도 죄여오는 그런 흔적이었다. 내막을 몰랐다면 아름답다고 생각할 법도 했다.
아오바는 순간 뱃속이 꼬이는 게 느껴졌다. 생살이 뚫리며 피가 울컥 터져나오는 풍경을, 그는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소중한 이의 몸뚱이라는 것은 퍽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래, 누군가는 이미 알아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가 지은 잘못을 굳이 슬프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후, ……? …아오바?"
잠시의 틈인데도 참 잘 읽어내는 남자였다. 입을 쪽쪽, 맞춰오며 코우자쿠가 연인을 채근했다. 최근들어 코우자쿠는 어리광도 제법 늘었다. 본디 기대거나 부빌 줄 모르는 사내였는데, 서로 같은 곳을 보며 피어나기로 결정한 이후로는 어느 정도 마음을 터놓은 모양이었다. 아오바는 잠시 말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코우자쿠가 마지막이라도 되는 듯 느리게 입술을 꾸욱 눌러왔다. 혀도 숨도 섞지 않았건만 꽤 뜨거운 구애였다. 아오바는 잠시 시선을 떨어뜨리다가 앞으로 고개 숙여 코우자쿠와 이마를 콩, 가져다 대었다. 보지 않아도 그가 얼마나 의아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 온 감각을 동원해서 세라가키 아오바라는 이를 훑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ㅡ."
그의 앞에선 종종 벌거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카드를 숨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훤히 드러나서, 그저 나는 네가 이 모습을 보고 싫어하지 않기를. 품에 안아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무력한 기분이었다. 나라는 것은 작게 일렁이는 촛불 같았다. 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무슨 생각해?"
"아니, 그냥…."
"응? 말 하기 싫어?"
"뭐어……."
"아오바."
어떻게 말을 할까?
"…아무 것도 아니야."
연인의 입맞춤에, 그 잠시간의 시간에 너의 얼굴보다 너의 과거 따위에 눈이 가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알려주기엔 너무한 것 같았다.
그냥, 그랬다.
그렇잖아. 코우자쿠.
"으음."
시치미를 떼자마자 아쉽다는 듯 코우자쿠의 입매와 눈썹이 아래로 축 처졌다. 불이 꺼진 방 안. 켜둔 수면등의 어둑한 노란빛이 반딧불이처럼 눈 앞에서 번졌다. 아오바는 잠자코 코우자쿠의 반응을 기다렸다.
"…오늘은, 하지 말고 그냥 잘까?"
그는 퍽 다정하여 또 한 번 접어준다. 집요하게 물어오지 않는 것으로 그는 또 한번 어른스럽게 굴어 버린다. 아오바의 옷깃을 붙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리다 다시 힘이 실리다가. 아오바의 기색을 살피며 그는 손을 떼었다. 잠깐 하는 짤막한 말에서조차 채 식지 못한 열기가 도는데도 자신이 싫다고 하면 손을 놓아준다. 이런 남자였다.
아오바는 마음속에 무언가 울컥 치솟는 것을 느끼며 뒤로 물러가는 코우자쿠를 품에 꼬옥 안았다. 제 표정은 보지도 못하게 꽉 잡아 안고 볼과 볼이 닿게 꾹 달라붙자 코우자쿠가 당황한 듯 등을 토닥여왔다. 아오바? 아오바, 왜 그래? 이제 안 할게…. 미안, 신경쓰지 못해서. 그렇게 하기 싫었어?
하면서, 이것 저것 주워 섬기는 말이 우스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코우자쿠."
이 사람은 아마 평생을 괴롭겠지.
"……응."
평생 외로울지도 몰라.
"…코우자쿠……."
하나. 고작 하나 부여받은 것이 아파서…쓰라려서. 어쩌면 좋을까.
"여기 있어, 아오바."
코우자쿠는, 자신이 여기 있으니 안심하라는 뜻에서 한 말이겠지만 아오바에게는 그것보다는 더 약한 뜻으로 들렸다. 여기에 있어줘, 같은. 손목이 붙들리는 감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 순간에 짓눌리는 듯 겁에 질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우자쿠는 제 부모에게도 손 내밀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 이럴 때 마다 남들보다 배는 더 절실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
아오바는 그것이 너무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이 정도는 아니었다. 꿀 섞인 물이란 것이 흐르다가 굳으면 이렇게까지도 굳어질 수 있는 거였다. 혀끝이 아릴 정도로 단 것. 너무 지독하다 싶어 혀를 떼면 자꾸만 생각나게 하는 것.
코우자쿠의 큰 손이 아오바의 뒷목 바로 아래에서부터 등허리 아래까지 길게 내리 쓸었다. 다정한 손. 저 손에서 몇 번이고 톡톡 돋았던 가시, 자신에게 있던 흉한 부분이 쓸려 내려갔었는지. 아마 그건 그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좋아해. 코우자쿠."
토닥거리던 손길이 잠시 허공에 멈췄다. 좋아해, 라는 말보다 더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이 있다면 아오바는 그것을 평생 사용할 테였다. 그것이 부족하여 그는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담는다.
"…정말이야……."
그리하여, 내가 당신에게 주고 싶은 사랑법이란 틈이란 틈이 있으면 어떻게든 파고 들어가 얽고 채워서 하나로 메워주는 것. 네가 싫어하는 것, 너를 힘들게 하는 것. 그것들을 찾아내고 마는 미운 존재가 되는 것. 아주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러다가,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그 모든 상처의 존재들과 나란 존재를 바늘과 실로 꿰어서 네가 떼어내 생각할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꽤나 무서운 얘기였다. 네가 상처들까지 좋아하게 되는지, 혹은 나까지 미워하게 되는지.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미래였으니 도박도 이런 도박이 없었다.
"……."
코우자쿠는 두어번 정도 느리게 아오바의 등을 도닥거리다가 다시금 그를 고쳐 안았다. 푹 숙인 고개가 어깨에 닿았다. 잔잔하게 깔리는 숨소리. 따뜻한 그 품 속에서, 아오바는,
"……."
소리없이 웃었다. 아, 분명히 닿았다. 이 사랑. 지독한 너에게 발 맞추어 가기 위해 나도 독해질 수 밖에 없었다. 네가 평생을 외롭게 살아 가야 한다면, 나 또한 널 사랑하며 평생을 외로워지기로 한다.
아오바가 재촉하듯 코우자쿠의 옷깃을 당겼다. 그는 이번에도 그 뜻을 읽어냈다. 아주 잠시, 그저 어린 새들이 서로 날개가 닿을 때까지 달라 붙어 있던 간지러운 시간이 지나고, 코우자쿠가 아오바의 턱끝을 잡고 살짝 올렸다. 이제 아무런 말도 필요없는 때였다. 아오바는 순순히 그 손길에 따르며 눈을 감았다. 자, 가득 삼키고 채워지는. 그런 사랑을. 서로의 몸을 더듬어 피워내는 그런 사랑을 할 시간이었다.